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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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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베이비박스에 담긴 무거운 논쟁

박창주 기자2018.07.10
[앵커멘트]
예전엔 아기를 남의 집 앞에 버리는 모습이 드라마와 현실에서 그려지곤 했죠. 그렇게 버려진 아기들이 좀 더 안전한 곳에 놓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한 게 바로 베이비박스인데요. 처음엔 장애아를 받기 시작해 지금은 부득이 키울 수 없는 아이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 버려진 아기들의 마지막 요람이자 최후 선택지라는 인식도 생겼습니다. 그 수도 크게 늘어 연간 200명 안팎, 그동안 누적치는 천 명을 넘어선 상황입니다. 일각에선 유기를 방치한다는 등의 비판적 시각도 존재하는 가운데, 개정된 입양특례법 시행이나 비밀출산제 추진 등 갖가지 쟁점들이 화두에 올라있습니다. 박창주 기자가 베이비박스에 담긴 무거운 논쟁들을 차근차근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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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쓴 20대 여성이 교회 벽에 다가섭니다.

잠시 멈칫하더니 싸개로 감싼 아기를 내려놓고 눈물을 닦으며 컴컴한 빗속으로 사라집니다.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 입양을 못 보내 애를 맡긴다는 젖은 편지가 놓였습니다.

사흘 뒤 벽 앞을 서성이던 남녀는 상담소로 자리를 옮겼지만 이내 새 생명을 두고 떠납니다.

형편이 어려워 모텔을 옮겨 다니다 끝내 양육을 포기하고 지방에서 올라온 부모입니다.

[기자ST1] 박창주 기자 / estyo@hmall.com
지난 2009년 12월 설치된 뒤 베이비박스에 놓인 아기가 조금씩 늘기 시작해 2013년부터는 200명 안팎으로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처음엔 장애아를 받다 점차 그 수가 늘어 전국 각지에서 몰렸습니다.

[기자ST2] 이런 가운데 베이비박스에는 여전히 숱한 쟁점과 엇갈린 평가가 담깁니다.

버려진 아기의 최후 요람이냐, 아동 유기 방치냐를 놓고 논쟁이 지속된 겁니다.

처음엔 유기된 아기들의 유일한 마지막 생존 공간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집 앞에 놓이던 아이를 보다 안전한 곳에서 받아 시설에 인도하는 방식입니다.

교회에서 보살핌을 받다 경찰과 지자체 신고 절차를 거친 뒤 서울시아동복지센터를 통해 시립병원과 보육원이나 입양 가정에 보내집니다.

지난해까지 971명의 베이비박스 아기들이 센터에 보내졌는데, 대부분 보육원에 맡겨졌고 112명이 입양됐습니다.

[녹취 : 서울시아동복지센터 관계자(음성변조) ]
서울시에 있는 아동들은 다 저희 센터로 들어오는데요. 거의 다 유기된 아기는 베이비박스를 통해서 들어오고, 그리고 다른 구청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아요. 그리고 거의 다 베이비박스를 통해 아기를 유기하기 때문에 다른 구에서 발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돼요.

그러나 생명 보호 취지에도 불구하고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자칫 영아 유기를 방치, 조장할 수 있는 데다 부모 신상에 대한 자녀의 알권리가 공식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게 주된 반대 이유.

나아가 아동 유기와 방조는 처벌 대상으로 베이비박스는 불법 시설일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논란거리가 아닙니다.

베이비박스에 대한 시각이 엇갈려 독일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금지하거나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결국 버려진 아기를 보호하는 것과 아기가 버려지지 않게 하는 것 중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

[인터뷰 : 조태승 / 베이비박스 센터장(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 ]
아기 엄마가 아기를 기를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게 저희들의 의도이죠. 그래서 베이비박스는 영아 유기를 조장하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영아 유기를 예방하는 곳이며, 또 불가피하게 아기를 기를 수 없는 부모가 아무 데나 아기를 버리지 않고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긴급 구제처 역할을 한다.

[인터뷰 : 김도경 /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 ]
사회 안에서 키울 수 있도록 노력을 한다면 엄마나 아이, 아빠가 베이비박스를 찾아가기 전에 주위에서도 그렇게 찾아가는 일이 없도록 말릴 것이고, 사실 굉장히 슬픈 일이잖아요. 베이비박스는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엇갈린 시각이 평행선을 긋고 있는 가운데 베이비박스는 지난 2012년 8월 개정된 입양특례법 시행으로 또 한 번 화두에 오릅니다.

입양특례법이 개정 시행되자 입양이 절반 이상 줄고, 동시에 베이비박스 아기는 급증하면서 두 현상의 연관성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친부모가 출생신고를 하고 법원 허가를 받도록 입양 조건이 까다로워진 게 입양 감소와 베이비박스 아기 증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 겁니다.

입양특례법 때문에 아동유기가 늘었다는 지적도 나왔는데, 실제 통계청 자료를 보면 유기 사례가 소폭 오름세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입양특례법 개정 목적은 투명한 입양 절차 확립과 국내 입양 장려 등으로 베이비박스 아기와 유기 증가와는 관련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가운데 유기 문제를 풀기 위한 방안으로 '비밀출산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임신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여성이 병원에서 익명 출산을 하게 한 뒤 자녀가 일정 연령이 되면 모친의 신상을 알게 하는 제도입니다.

임신을 감추기 위해 위험한 환경에서 출산을 하거나 유기하는 걸 막고, 아기의 부모에 대한 알권리를 지켜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인터뷰 : 오신환 / 국회의원 ]
본인의 인적 사항들을 비밀리에 아이를 출산할 수 있고요. 그러면서 친생 부모도 보호받을 수 있는 내용이 법안에 담겨있으며, 특히 더 중요한 것은 아동들이 생명의 존중권을 선택받으면서 오히려 국가가 이 아동들을 길러내고 보호할 수 있는 이런 양쪽의 부분들을 다 충족시키는 법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베이비박스를 반대하는 논리와 같은 맥락의 논쟁에 부딪혀 비밀출산제 법안 추진은 제동이 걸려 있는 상태입니다.

[전화인터뷰 : 보건복지부 관계자(음성변조) ]
기관 설립이라든가 이런 것에 있어서 현재 아동복지시설과의 기능 중복이 있어 검토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게 아동 유기 수단이라는 베이비박스에 가해지는 그런 비판이 또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

상자에 놓인 아기가 늘면서 보호를 위한 지원책은 한계에 부딪혀 있습니다.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지역 주변에서 온 아기는 2% 남짓, 이제는 시내 곳곳, 전국 각지에서 몰립니다.

그런데도 지원 업무는 자치구가 도맡다보니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 선현철 / 관악구청 전 노인청소년과장(현 일자리경제과장) ]
1주일에 2회 정도 저희들이 아동을 인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계하는 과정에서 어린 아동이다 보니까 전문가나 간호원이 동행을 해야 되는데 현재는 행정차량으로 자원봉사자와 같이 이동을 하다 보니 안전이라든지 이런 면에서 취약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치료와 인계 업무를 서울시와 분담하는 방안이 제안됐지만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입니다.

서울시가 인력 지원 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녹취 : 서울시청 관계자(음성변조) ]
시설에 보내든 또는 입양을 보내든 하는 것이거든요. 이것을 다 관악구가 책임지고 있잖아요. 지원을 해야되지 않나 해서 지금 방안을 찾고 있어요. 유기아동 보호 조치 체계가 다 자치구로 넘어가 있거든요.

[기자ST3] 박창주 기자 / estyo@hmall.com
생명 존중이냐 영유아 유기 방치냐, 10년 가까이 이율배반적인 논쟁의 끈에 묶여 있는 베이비박스. 여전히 마땅한 대책은 나오지 않고 존치 여부를 둘러싼 찬반 논란만 되풀이되고 있는 가운데, 오늘도 눈물 젖은 편지와 함께 버려질 아기를 기다리며 묵묵히 문을 닫고 있습니다. HCN뉴스 박창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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