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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페루 이야기 - 下

기사입력2017.12.22


(110호에 이어서) 잉카는 12세기경 페루의 쿠스코를 중심으로 일어난 문명이다. 시조는 태양신 비라코차의 아들 인티로부터 황금 도끼로 점지받은 배꼽 도시 쿠스코에 도읍지를 정한 망고 카팍이다. 잉카는 크게 3왕조, 세부적으로는 18대까지 왕을 이었으며 투팍 이마루가 마지막 왕이었다.

9대 왕 파차쿠티(1438~1471)와 10대 왕 토파 잉카 유팡키(1471~1493)는 한국사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같은 지도자로 1438년경 오늘날의 남미 대부분에 해당하는 땅을 평정하고 통일된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 제국 안에는 50개의 다른 언어를 쓰는 1200만 명의 부족이 있었다. 잉카는 공예나 건축에 우수한 능력을 보였지만 문자는 없었다.

그러나 13대 왕인 아타우알파가 스페인군에 사형됨으로써 사실상의 왕조는 끝난다. 그 이후는 스페인 식민지정책 아래에 있었기에 자주적 의미의 왕조라고는 볼 수 없다. 11대 왕 우아이나 카팍 이후 스페인군이 시나브로 침입하기 시작해 1532년 잉카제국을 완전히 접수하기까지 수많은 약탈과 학살이 따랐다. 스페인군은 13대 왕과 많은 잉카인을 죽이고 제국의 유물과 황금을 훔쳐갔다. 그뿐만 아니라 청정지역이라 불릴 만큼 깨끗했던 제국에 유럽의 전염병까지 전해지면서 태양을 숭배했던 문명국 잉카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스페인군은 식민지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잉카의 귀족들과 피를 섞기 시작했고 그사이에 태어난 인종을 메스티소라 한다. 현대에는 잉카의 역사는 지배자인 스페인이 쓴 기록보다 메스티소가 쓴 역사가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보아 메스티소에 의해 쓰인 글이나 그림이 역사적 사실에 많이 쓰이고 있다.

스페인의 탄압 때문에 잉카인들이 쿠스코의 코리칸차 신전을 떠나 숨어들어간 곳이 바로 우르밤바 계곡의 마추픽추이다. 마추픽추는 ‘늙은 산’이란 뜻인데 1911년 우리에게 <인디아나 존스>로 알려진 영국의 빙엄 교수에 의해 발견됐다. 그 이후 스페인군은 코리칸차를 폐허로 만들었고, 지금은 그 터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나는 폐허가 된 신전 앞에서 ‘황성옛터’라는 옛 가요가 떠올랐다.

쿠스코에 있는 대성당 성화聖畵를 보면 메스티소들이 스페인에 대해 얼마나 반감이 큰지 상상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메스티소 화가가 리메이크해서 그렸는데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의 자리에 잉카를 멸망시킨 정복자 피사로의 모습을 그려 넣고, 예수 십자가형 집행지인 골고다 언덕에는 로마 군인의 갑옷 대신 중세 스페인 기사의 갑옷으로 그려 넣었다.

페루는 우리가 생각하는 작은 나라가 아니다. 땅도 크지만 유적지 또한 많아 역사적 가치가 있다. 또 서양문명과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 간 모진 인연이 생각나 묘한 감상에 젖기도 하는 곳이다. 여행을 하는 중 야만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서양문명이 아메리카대륙에 한 일들이 곧 문명을 가지고 저지른 야만이 아닐까, 그리고 황금에 눈이 어두웠던 그들이 사람의 생명을 너무 경시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여행 내내 떨쳐버릴 수 없었다. 잉카문명이 쌓은 십이 각 돌담은 수많은 지진에도 건재하게 버티고 있지만 스페인이 구축한 성당과 그 벽은 여지없이 다 무너져 재건축되어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잉카인들은 절대 비문명인이거나 야만인이 아니었다. 태양신을 믿었던 잉카인은 백인을 보고 태양신이 보낸 천사쯤으로 알고 순진하게 경계를 늦춘 것이 그들을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 숨어들어 간 비밀요새 마추픽추를 우주 조화와 맞추어 건설한 잉카인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올리며 언젠가 그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기원해 본다. 참 다행스러운 일은 근자에 한국의 문화관광부에서 페루의 유적과 유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데이터베이스화하는데 전적인 지원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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